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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전의 난중일기 남긴 반곡 정경달 장군
임진왜란 420주년! 이순신 장군의 종사관으로 종횡무진한 정경달 장군
 
위정성 기자 기사입력  2017/10/07 [09:44] ⓒ KJB i방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전라남도 장흥군 장동면 원촌마을의 영광 정씨 4인을 비롯하여 이순신, 임영립을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사우,반계사© 위정성 기자

【일등방송=위정성 기자】임진왜란 420주년을 맞아 전남 장흥 출신의 명장이자  이순신 장군의 종사관으로 종횡무진한 정경달(盤谷, 丁景達)(1542~1602)의 육전의 난중일기가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1985년에 새로 발견된 제2의 난중일기을 기록한 조선 중기의 문신 정경달자는 이회(而晦)이고 호는 반곡(盤谷)으로 1542년 전남 장흥 반산리에서 태어났.

 

그는 1570(선조 3)에 식년 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을 시작하여 병조정랑, 가평현감, 남원부사, 청주목사, 함경도백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산부사로서 의병을 모으고 관찰사 김성일(金誠一병마사 조대곤(曺大坤정기룡(鄭起龍이해(李垓) 등과 함께 금오산과 죽령 등지에서 왜적들을 격파했다

 

임진왜란으로 선산이 왜군에 함락되자 인근 금오산으로 들어가 유격전을 펴 일본군 415명을 참수했다는 승전보 소식이 인근 고을에 알려지면서 수많은 의병장들이 합세했다는 기록도 있다.

 

1594(선조 27)에는 수군통제사였던 이순신의 요청으로 그의 종사관이 되어 행정, 징모업무, 군수조달, 시찰, 전령, 명 장수들과의 외교 등을 담당했다. 이순신 장군의 종사관으로 근무하며 활약한 공적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19세기 다산 정약용이 적을 방어한 수령의 모범 사례로 정경달을 높이 평가해 <목민심서> ‘어구(禦寇)’ 항목에 수록할 정도이다.

 

이순신이 원균의 모함으로 투옥되자 조정에 나아가 탄원서를 보내고 그의 석방을 위해 노력했다. 정경달은 왕에게 이순신을 죄주는 것을 적극 만류하기도 했다.

 

탄원서에는 이순신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적을 방어하는 재주는 일찍이 그 예를 찾을 수 없습니다. 장수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기회를 엿보고 정세를 살피는 것을 가지고 싸움을 주저한다고 몰아 죄를 물을 수는 없습니다. 왕께서 통제사를 죽이시게 되면 사직을 잃게 되옵니다라며 이순신의 석방을 강력히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 반계사 유물     ©위정성 기자

 

그의 저서로는 반곡집(盤谷集)》 《반곡난중일기》 《반곡시집광국공신계회도(光國功臣契會圖)》 《흉배(胸背)》 《공신록권(功臣錄券)등이 지방유형문화재 제164호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정유재란 당시 충무공의 난중일기는 바다에서의 전투를 상세하게 기록한 것이 대부분이었다면 반곡집(盤谷集)은 내륙전투에서의 전략과 전과를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다

 

반곡난중일기에는 임진년(1592) 413일부터 무술년(1598) 217일까지 약 7년여 동안의 전쟁 기록, 평안도 용천·청주·곽산의 난에 대한 기록하고 있어 왜란 당시 상황을 상세히 알 수 있는 학계의 소중한 자료가 되었다.

 

그의 아들인 정명열(丁鳴說)도 정유재란 때 이순신에게 쌀과 배를 보태고 명량해전에 함께 참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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